
발렌타인을 기대하지 않는 남자들은 없을 거다. 사랑을 전달하는 이벤트는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포장되어 며칠 전부터 거리에 홍보되었고, 우정이라도 좋으니 가지고 싶은 남자들은 그날만 된다면 여자들의 근처에 서성거리면서 초콜릿을 기대한다.
아르바이트로 인해서 발렌타인에 종일 함께 있어 줄 수 없었던 마린이었으나, 그럼에도 류하민은 그녀가 준비했다는 이벤트를 기대하였다. 바깥의 풍경은 그의 기대감을 오르게 만들기 좋았고,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는 그는 결국 기대감을 품었다.
그녀가 아르바이트하는 장소에 도착하여 준비된 자리에 앉았고, 제 앞에 준비된 그녀를 닮은 귀여운 곰인형과 카페의 분위기에 어색하게 시선을 굴리면서 그녀가 건네주는 음식을 바라보았다.
“…? ……??”
그리고 짐작건대 그는 이런 이벤트는 원하지 않았다.
***
마린과 하민의 연애는 크게 순탄하지는 않았다. 이유의 대부분을 묻는다면 그들의 유년 시절을 넣어두더라도 류하민의 불운과 관련이 있었다. 어디를 향하던 둘은 그의 불운을 마주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서 제대로 된 데이트도 즐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언제는 비가 오기도 하고, 갑작스레 문을 닫거나, 다치기도 하던가. 그럼에도 마린은 항상 그의 곁에 있었고, 하민도 자신이 쥔 유일한 행운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행운을 바라보면서 손을 쥐었다. 자신의 손을 잡은 하민을 바라보면서 작게 웃음을 지은 마린은 그에게 기대었다. 그것을 기대하던 움직임은 아니었기에 하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익어버린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나름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안, 내일 아르바이트가 잡혀서…….”
“저번에 너 도와주셨던 사람들이라며.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날이 날이라…….”
“…괜찮아.”
그녀의 말에 서운함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일 년에 한 번이 있는 발렌타인이었고, 이런 이벤트를 놓칠 마린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작부터 그에게 먹고 싶은 디저트의 종류를 물어보기도 하였다.
“어차피 네가 뭐라도 해줄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꼭 발렌타인이 아니더라도 화이트데이도 있으니까. 난 언제나 시간 많으니까 괜찮아.”
하민은 언제나 시간이 많았다. 집에서 게임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도 없었고, 마린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념일에는 시간을 비워두는 편이었다. 자신에게 기대는 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시선을 한 번 굴리더니 마주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그래도 챙겨주고 싶어서… 내가 일하는 곳에서 발렌타인 이벤트를 하는 중이니까, 와줄래?”
“음…….”
마린의 말에 하민은 고민하였다. 자신의 체질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하민은 마린의 직장으로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스스로 조심하고 있으므로 마린도 그를 따로 직장에 초대한 적은 드물었다. 자신으로 인해 마린의 일을 그르친다면 하민이 죄책감을 가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이 많은 카페라고 들었는데.”
마린이 이번에 일하게 된 곳에 대해선 하민도 알고 있었다. 길을 지나가다가 보기도 하였고, 그쪽으로 SNS를 하지 않는 그에게도 넘어올 정도로 무척이나 인기가 많은 카페였다.
거기에 발렌타인 이벤트까지 겹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곳에 방문할지는 관심이 없는 하민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린이 알바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더더욱 모를 수 없는 일이었다.
“응, 그래도 산호가 와줬으면 좋겠어.”
마린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그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약했고, 특별한 날에 자신과 같이 지내고 싶어 하는 이를 밀어낼 수 없었다. 발렌타인이라는 기념일에 함께 할 수 없어서 서운한 것은 마린만이 아닌 본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 갈게.”
말 한마디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연인의 긍정적인 말 한마디. 하민의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기대하라는 마린의 모습에 하민은 결국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외면하였다.
눈만 감으면 그 모습이 신기루처럼 남아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덕분에 하민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누구보다도 퀭한
얼굴이 되어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마린이 일하는 카페로 향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좋지 않은 인상이었으나, 잠을 자지 못해서 더욱 좋지 않은 인상이 되었다.
평소에 입고 있던 후드티를 입었다면 모자를 쓰고 인상이라도 가릴 수 있었을 텐데, 참 안타깝게도 나름대로 차려입는다며 다른 옷을 입었기 때문에 얼굴을 가릴 수도 없었다.
‘하…… 그냥 평소대로 올 걸 그랬나.’
자신의 안색을 보면 마린이 걱정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길은 멀리 나와버렸다. 돌이킬 수 없었기에 하민은 제 애꿎은 앞머리만 만지작거리면서 인상이 조금 가려지길 바라였다.
시선의 끝에서 보이는 카페의 모습에 옷차림만 더듬거리면서 정돈하였다. 적어도 남들 눈에는 그녀에게 어울려 보이는 남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걸음을 마저 옮겼다.
***
도착한 카페는 당연하게 사람이 많았다. 길을 가면서 몇 번 보았을 때도 사람이 제법 많았으나, 이렇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발렌타인이라고 진행하는 이벤트로 인해서 사람들이 만리장성처럼 길게 줄을 선 모습에 하민은 기가 죽었다.
저 사람들을 지나쳐서 카페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을 자신도 사라지기 직전이었으나, 본인을 발견한 직원 한 명이 크게 인사를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오셨어요? 마린 기다리고 있어요.”
“아…….”
줄을 지나쳐서 들어가는 자기 모습 뒤로 박히는 시선에 죽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안으로 안내하는 직원에게도 그 시선이 박혔을 텐데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카페의 안으로 밀어버린다. 직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어서 입 밖으로 한숨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을 맞이하는 마린의 모습에 그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까맣게 잊을 정도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왔어, 산호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웨이트리스의 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담기자, 지금까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사라졌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진 만두머리에 귀여움을 강조하는 듯한 큰 리본과 헤드 드레스는 무척이나 귀여워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입을 벌리는 등의 추한 행동을 벌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응, 사람이 엄청 많네.”
감상을 남기기보다는 밖부터 시작해서 안까지 카페에 가득 채워진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녀를 걱정하였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녀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기에.
그러나 마린은 하민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음을 흘려줄 뿐이었다.
예약석인지 자신의 이름이 놓인 테이블, 일하기 때문에 계속 같이 있을 수 없어서 그런지 마린을 닮은 푸른색의 곰인형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메뉴는 내가 가져다줄게. 산호에게 주는 특별한 메뉴야.”
“…그렇게 이야기하니 기대되네. 알겠어.”
“후후, 곰 인형이랑 기대하고 있어야 해~”
마린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하민은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 기대감이 없었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잔 채로 바깥에 나오지 않았을 거다.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것 같은 그녀의 말에 괜히 얼굴을 붉힌다. 그러곤 카페를 둘러보았다. 메뉴를 가지러 가는 중에도 중간에 주문하는 손님으로 인해서 주문받고, 응대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다.
잘못을 한 사람처럼 시선을 급하게 피하면서 카페를 둘러보는 척을 하게 된다. 누군가 하민의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면 한심하다고 여길 법한 일이었으나,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눈치가 그리 좋지 않은 마린을 속였을 거로 생각하며 진짜로 카페를 둘러보며 눈을 끔벅였다.
‘당연하지만 커플이 많네.’
이벤트가 이벤트라서 그런지 가게에는 커플이 엄청 많았다. 커플 이벤트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커플만 있는 카페는 또 처음이라서 고개를 한 번 기울이다가 금방 관심을 접었다.
‘응?’
마린과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하민보다도 음침한 눈빛으로 하민을 보고 있었는지, 카페를 둘러보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몰래 보고 있으면 눈을 피할 법도 한데 그녀는 시선조차 피하지 않고 그저 느긋한 웃음을 지으면서 하민에게 인사를 하였다. 얼떨결에 같이 인사를 한 하민은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머리만 만지작거렸다.
나름대로 차려입는다고 왔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멀어졌던 정신을 차린다.
“산호야, 뭘 보고 있어?”
“어? 어… 너랑 일하고 있는 사람…….”
이 있었는데…… 말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린다. 분명히 사람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눈을 뗀 사이에 사람이 사라졌다. 한순간에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하민은 아니, 정말로 있었는데. 라는 말만 중얼거리면서 마린의 눈치를 보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린은 그저 웃으면서 하민만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은 의미든 아닌 의미든 하민이 침을 삼키며 그녀를 마주하였다.
“왜 다른 사람을 봤어?”
“…아?”
“디저트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내 생각을 해주면서 기다려줘.”
마린은 그저 유유하게 떠나갔으나 하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음료라도 마시는 중이었다면 쿨럭이면서 음료를 엎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린이 하민에게 한 대사는 그만큼 충격이었다.
‘마린, 마린이 저런 말을?’
마린은 하민에 비해서 표현에 대담한 편이었다. 솔직하고, 숨김이 없는 그녀였기에 하민도 그녀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이야기하는 이는 아니었다.
자신이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고뇌하고 있는 찰나, 주변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서 시선을 굴렸다.
“어머, 이거 당첨이죠?”
빨간색의 하트를 손에 쥔 여성 손님이 이야기하였다. 상기된 표정으로 하트를 바라보고, 자신의 옆에 다가온 직원을 번갈아 보면서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저게 그 이벤트인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기대하던 이벤트.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는 특별 메뉴 주문하면 추첨을 통해서 상품을 준다는 이벤트였다. 여기까지는 다른 곳이랑 크게 다를 바 없는 이벤트라고 보이겠지만, 준다는 상품이 카페만의 특색과 더불어서 커플링, 숙박권 등 작은 동네 카페에서 하는 이벤트라고 볼 수 없는 상품들이었다.
당첨에 걸린 커플은 누구보다도 신이 났으며, 직원은 그런 커플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하트를 하나 건네받았다.
“네, 당첨이세요. 상품 추첨은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네! 가자, 자기야. 어차피 다 먹었잖아. 추첨하고 바로 가자.”
“응, 응.”
직원의 안내에 따라서 커플은 자리를 이동하였다. 이미 다 먹은 자리였기에 직원은 짐을 챙기고 오셔도 괜찮다고 말하였고, 그들은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그 자리가 곧바로 정돈되더니 사람이 다시 들어온다.
‘나도 상품에 걸리려나.’
직원이 직접 주는 것이기에 상품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하민은 상품이 걸린다면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을 잠깐 하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카페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고, 바깥에도 당연히 사람이 너무 많았다.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적어버리는 사태가 되어버린 카페의 사태에도 직원들은 능숙하게 응대하면서 사람들을 맞이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을 일인가?’
카페 직원이나 사장에겐 미안한 생각이지만, 하민은 굳이 이 카페를 이용해야 하는 메리트를 모르겠다. 본인이야 여자 친구가 이 카페에 일하고 있기에 찾아온 것에 불과했고, 발렌타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이곳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도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카페의 회전율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지금까지 하민이 들어와 앉아서 나간 커플은 방금 ‘당첨’으로 인해서 나간 커플 한 쌍뿐이었다.
하하 웃음을 흘리는 커플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커져서 하민은 저도 모르게 핏기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운이 매번 좋지 않아서 느는 것이라고는 위험에 대한 직감뿐이었다. 두꺼운 옷 틈새로 팔에 소름이 돋은 것 같았다.
‘왜 나가는 사람들이 없지. 근데 사람은 어떻게 들어오는 거지?’
하민이 알고 있는 한 이 카페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었다. 마린이 옆에서 같이 대화해 준다면 모를까, 혼자서 카페만 둘러보는 하민이었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 두려움만 커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들어가는 유일한 공간을 바라보았다.
“산호야, 기다렸지.”
“아.”
“무슨 생각 했어?”
“어? 아니, 아무것도.”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결국엔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린은 어린이처럼 볼을 부풀곤 테이블에 디저트를 내려놓았다.
“내 생각 안 했어?”
“……그!”
“…내 생각 많이 해줘야지. 응?”
“…….”
하민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디저트를 다 내려놓고, 자리에 앉은 마린은 하민의 옆에서 팔을 꾹 잡으면서 기대었다. 하민은 입을 지끈 감으면서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으나, 머릿속으로는 자신의 여자 친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산호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디저트야.”
“어, 어…….”
이 이상의 생각이 본인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민은 생각을 멈추었다. 귀여운 여자 친구가 준 디저트에 집중하기 위해서 겨우 준비된 스푼을 쥐고서는 디저트를 바라보았다.
“……?”
이제는 디저트를 즐기고, 마린이 일하는 중에도 중간중간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운 기념일을 즐길 생각이었다.
‘이게, …뭐지.’
그러나 그의 앞에 놓인 디저트는 도저히 그가 즐길 수 없는 형태에 가까운 디저트들이었다.
오늘이 핼러윈이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끔찍한 묘사의 디저트들을 바라보았다. 하민은 하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비위가 무척이나 약했다. 과거에 험한 일을 겪었더라도 익숙해질 수 없었다.
사람의 신체 일부로 만들어진 장식품에 초콜릿은 왜인지 검붉은색의 빛을 띠고 있었다. 먹으면 곧바로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냄새도 나는데, 그것은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였다.
외면하고 싶어서 눈을 한 번 비볐으나, 현실을 외면하여도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해야만 하였다.
하민은 내뱉고 싶은 한숨을 그대로 삼켰다.
“이런 서프라이즈는 괜찮았는데.”
하민은 자신을 탓하고 싶었다. 자신의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웃고 있는 여자 친구를 탓하고 싶지 않았던 하민은 들고 있던 숟가락을 한 번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손끝을 떨었다.
“내가 준비한 건데… 싫어?”
남자 친구가 이런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린은 자신을 걱정하기는커녕 그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떨어진 숟가락을 다시 주워주더니 그대로 하민의 손에 쥐여주었다.
하민은 지금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걸 먹어야 한다고?
진짜로?
하민은 자신의 유일한 행운인 마린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렇기에 그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으나, 그것에 선이 있었나 보다.
자신은 그 선을 바라보기만 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면서 하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한 입이라도 먹어주면 좋을 텐데.”
카페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기분이었다. 화장실 하나 제대로 못 가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질척이듯 하민에게 달라붙었던 마린은 아쉽다는 듯 그에게 떨어졌으나 시선은 집요하게 그를 따라붙었고, 그 시선을 외면하였다.
“금방, …금방 다녀올게.”
먹겠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간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는 그대로 문을 잠그고 화장실 문에 기대어 숨을 길게 내뱉었다.
나가지 않는 사람들, 이상한 디저트, 이상할 정도로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민은 무척이나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아까 당첨되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지.’
혼자서 혼란스러운 상황이기에 자세히 살펴보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었는지에 관해서 묻는다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들어오는 사람은 명확하게 보았는데 나가는 사람은 영원히 보이지 않았다.
하민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 상황이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사태도 제대로 모르는데 갑작스레 경찰을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정의감이 없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의 안위만 중요한 사람이었다.
여자친구 앞에서 내뱉을 수 없는 비속어를 실컷 내뱉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다.
주저앉고 싶은 심정을 겨우 던지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나선다.
짧은 시간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게 찔리는 기분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로 그는 다시 자리로 향하였다.
그를 기다리던 마린은 환하게 웃으면서 그를 맞이하였고, 그는 떨떠름한 채로 자리에 앉아서는 여전히 그대로 인 디저트를 바라보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산호야, 아~”
숟가락을 들지 않는 그를 위해서 마린이 숟가락을 들었다. 검붉은 초콜릿이 소스로 흘러넘친 푸딩을 한입 크기로 뜨더니 그의 입가에 가져간다. 어쩐 지 오래된 혈흔 냄새가 나는 것은 그의 착각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아~?”
“어, …어어…….”
여자 친구가 주는 것을 결국 거절할 수 없어서 천천히 입을 벌리던 그는 급하게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푸딩을 먹기 위해서 마음의 다짐을 하던 그는 이런 이벤트를 반가워하였고, 반갑지 않았던 마린은 조금 섭섭하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이면서 하민과 같이 시선을 돌렸다.
울렁거리는 시야에서 다급하게 나오는 커플이 보였다. 방금까지 당첨에 걸려서 화목하게 웃고 있었던 커플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달리려고 하였으나 발을 잘못 디뎠는지 넘어졌다. 넘어진 커플에게 직원이 다가와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커플은 그 모습에 뒷걸음질하였으나, 직원은 그들을 일으켰다.
“산호야.”
하민이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자, 마린은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면서 지긋이 바라보았다. 손 위로 느껴지는 온기에 놀라서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 향한다. 만족한다는 듯 마린은 웃었고, 하민은 시선을 굴리면서 말을 돌렸다.
“저 사람들은 대체 뭐지?”
“…글쎄.”
시선을 굴리는 하민을 자신에게 고정하려는 것일까. 마린은 그에게 좀 더 밀착하였고,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감에 하민은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느릿하고, 느긋하게 웃음을 짓는 마린의 모습에 자신의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준비한 상품이 마음에 안 들었나 봐. 그래서 직원이랑 협상하다가 잘 안되니까 그러는 것 아닐까?”
누가 보아도 그들은 직원을 향해서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린은 별것 아니라는 듯 그저 웃음을 흘리면서 다시 그에게 스푼을 내밀고 있었다.
어서 먹으라는 듯, 이젠 피하지 말라는 듯.
그의 울렁거리는 시야 속에서 커플들이 빠져나간 문이 보였고, 그 안에서 직원이 튀어나왔다. 문밖으로 나온 직원은 마린에게 다가오더니 미안하다는 웃음을 지으며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마린은 그 말을 듣고서는 잠시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호야, 미안. 갑자기 자리를 비워야 할 거 같아……. 먹으면서 기다려줘.”
마린은 스푼을 하민에게 쥐여준 채로 자리를 떠났고, 마린이 자리를 떠난 이후에야 하민은 겨우 자유를 되찾았다. 자리에 남은 것은 류하민과 푸른색 곰 인형뿐이었다. 마린을 닮은 곰 인형이었으나, 바로 전까지 같이 있던 이와는 다르게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그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까지와 다르게 다들 자신의 연인들에게만 집중하고 있었고, 카페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어서 거북한 마음에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행복에 빠져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친다.
도착한 곳은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하민은 행복한 커플이 들어갔다가 절망스러운 얼굴을 한 채로 나왔던 모습을 기억하였다. 그렇게 힘든 표정으로 겨우 문고리를 잡아 쥐면서 심호흡하였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후회한다.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겨우 삼키면서 숨을 참았다. 조그마한 숨소리와 틈 사이의 빛에 들킬지도 몰라 곧바로 문을 닫았으나, 제 망막에 새겨지는 광경에 놀라서 숨도 쉴 수 없었다. 눈을 지끈 감았다.
‘미친…….’
작은 통 안에 사람들이 갇혀있었다. 아까 붙잡힌 커플들을 포함해서 ‘당첨’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팔에서부터 이어진 기다란 줄은 사람들의 피를 뽑아내는 중이었고, 그것은 길고 긴 곳을 지나서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짙은 혈흔 냄새가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속이 울렁거렸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서 이동하자 사람들이 있어서 몸을 숨겼다.
줄을 타고 흐르던 혈액이 한 곳에 보여서 정제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혈액은 초콜릿 형태가 되어버렸고, 그 초콜릿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당연하다는 듯 마린도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신성한 것을 모시기라도 하는 것 같은 행동에 하민은 인상을 한 번 찡그렸으나, 그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벌어지는 사태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용기가 있어서 그녀를 빼낼 자신도 없었고, 이 거지 같은 곳을 깽판 칠 자신도 없었다. 그러다가 괜히 다음에 피를 뽑히는 것은 자신이 될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는 다시 뒷걸음질하면서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
어두운 공간을 빠져나오자, 당연하다는 듯 카페가 자신을 맞이하였다. 이렇게 허겁지겁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눈에 띌 법도 한데, 사람들은 상관없다는 듯이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있어서 하민을 더 공포에 밀어 넣었다.
마린에게 의심받을 수 없으니, 자리로 향하였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조작하였으나, 긴장한 나머지 112를 누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결음이 들리는 동안 하민은 계속 문을 관찰하였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위장을 게워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들었다. 연결된 경찰에게 사정을 설명하였고, 알았다는 답변을 받자 조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과연 일이 잘 풀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감금되어 착취당하고 있었다. 자신의 불운이라면 분명 자신이 그것의 제물이 되어야 했는데 자신은 이렇게 멀쩡했고, 경찰에 신고까지 하였다. 하민은 지금 이 상황이 자신을 더 큰 구덩이로 밀어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손톱을 깨물었다.
초조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도 없던 버릇이 튀어나와서는 계속 삽질을 하고 있자, 시야에 파란색의 곰돌이가 눈에 보였다.
‘원래 저렇게 있었나?’
이상할 정도로 마린을 닮은 색을 가진 곰돌이가 그를 바라보자, 마린이 옆에서 괜찮다고 속삭여주는 기분이 들었다. 한 번 든 생각에 모든 것이 수상하게 보였기에 인형이 저렇게 앉아 있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인형이 혼자 움직일 리도 없는데,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자괴감이 들어서 이 순간이 꿈이기를 간절히 빌어도 보았으나 꿈일 리는 없었다. 당장 볼을 잡아당겨도 아픔이 느껴졌으니까.
인형이 그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고, 하민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자기 손을 둥글게 말아 주먹을 쥐었다. 그제야 그는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를 닮은 인형이 그것을 감시하고, 걱정한다는 생각까지 들자, 고개를 흔들어 떨쳐내 버렸다.
“산호야, 기다렸지. 음… 뭐라도 먹고 있지 그랬어…….”
하민이 생각하는 것으로 삽질하고 있을 때 마린이 다가왔다. 분명 아까와 같은 복장이었으나, 통로의 끝에서 바라본 마린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시선을 굴리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열심히 준비한 건데.”
옆자리에 앉은 마린은 서운하다는 듯 접시를 바라보았다. 한 입도 먹지 않은 푸딩은 크림이 녹아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먹이기 위해서 떠다 준 흔적 외에는 그대로였다.
마린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하민은 죄책감이 들었으나, 디저트의 정체를 깨달아버렸기에 그것을 감히 먹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말을 돌리기 위해서, 혹은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몇 가지를 질문하였다. 이 상황과 관련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마린이 정신
팔리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마린은 그저 웃음을 흘리면서 대답해 주었고,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자기 손을 잡은 마린은 점점 하민에게 질척이게 맞닿았고, 하민은 부끄러우면서도 그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마린이 하민에게 완전히 파묻히듯 안기자, 하민은 눈을 지끈 감으면서 그녀를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예상외의 행동일 텐데도 마린은 그저 여유롭게 웃음을 흘렸다.
“마린.”
“응.”
“…미리 사과할게.”
“응?”
하민은 그대로 마린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마린은 당황한 사람처럼 바둥거렸다. 류하민이 아무리 운동 부족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남자의 힘을 마린이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틈에 하민은 이 미친 카페를 튀어 나갔다.
뒤에서 이상한 비명소리가 들렸으나 그건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마린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면서 더 꽉 끌어안았고, 카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최대한의 힘으로 달렸다.
처음엔 마린도 느긋하게 내려달라고 이야기하였으나 카페가 점점 멀어지자, 더욱 흉포하게 소리쳤다. ‘산호야!’ ‘내려줘!’ ‘안돼, 안돼!’ 평소라면 들을 수 없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으나 그는 마린의 말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였다.
평소에 게임만 하는 인간이 무슨 체력이 있겠는가. 마린을 끌어안고 카페를 뛰쳐나온 것 자체가 그에겐 기적이었다.
들려오는 소음은 자동으로 차단하였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카페에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마린은 더욱 크게 소리쳤었으나 점점 소리가 멎어 들었다. 그 모습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하민도 걸음을 조금 늦췄다.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경찰차가 시끄럽게 울렸다.
경찰이 지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하민은 그제야 마린을 내려주었다.
남자 친구가 갑자기 자신을 안아 올리더니 죽어라 달리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는 마린이 어리둥절하게 하민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산호야. 응?”
다정한 그 한마디에 하민은 숨을 골랐고, 숨을 고르자 하민은 콜록대기 시작하였다.
“너…….”
“응.”
“다시는 알바 하지 마…….”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지쳐서 인상을 팍 찡그린 그의 얼굴과 함께 바라보자,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었다. 하민의 얼굴에 익숙한 마린은 아무 말이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탈탈 털어낸다.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어야 하는 자신의 저질 체력을 탓하면서 하민은 아직도 숨을 골랐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린은 괜히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부스럭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꺼내었다.
초콜릿이었다.
직원들 몰래 들어간 방에서 무엇이 초콜릿을 만들었는지 알고 있는 하민은 초콜릿을 무척이나 지겹다는 듯이 바라보았으나, 마린은 신경 쓰지 않고 부스럭거리면서 껍질을 까 그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복잡한 심경을 담은 채로 초콜릿을 우물거린다. 혀끝으로 느껴지는 달콤한 느낌은 자신이 아는 평범한 초콜릿이라서 안심하고 그것을 깨물고 삼켰다.
“뭔지 모르겠지만, 미안해.”
“……됐어.”
마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카페에서 그런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누가 예상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받았을까. 심지어 그녀가 일하던 때에는 평범한 카페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런 상황을 예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험한 소리만 툭툭 나왔다. 그것이 류하민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하면 마린이 기겁하고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멋대로 판단하여 아무것도 설정하지 않은 채였고, 마린도 묻지 않았다.
마치 네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그의 손을 잡아주고 웃었다.
“걱정했지.”
“……어.”
“…정말 미안해…….”
“됐어.”
눈썹까지 내린 채로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할 말은 더 없었다. 헉헉거리면서 숨을 고르는 그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에서 묘한 온기까지 흐
르니 더더욱 그는 말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손을 마주 잡으니 기쁘다는 듯 웃는 마린의 모습에 하민도 진정하여서는 집에 가자며 걸음을 옮겼다.
마린은 하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자신이 일하던 가게 방향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 사이에 온 구급차가 몇 사람들을 이송하고, 줄 서 있던 이들을 해산시키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가자. 쉬고 싶어.”
“응, 알겠어.”
경찰차에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추정되는 직원들이 함께 수갑을 찬 채로 들어가고 있었다. 집요하게 그 모습을 관찰한 마린은 그저 웃음을 지었다.
아까와 같은 아주 느긋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